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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7. 열정이 성공을 부르는 것이 아니라 성공이 열정을 부른다.(feat. 야마구치 슈)
    청년사업가의 조각들 2023. 2. 23. 14:44

     

    오늘은 제가 20대부터 반복적으로 했던 어떤 '선택'에 대한 생각을 적어보려고 합니다.

     

    분야는 여러가지겠지만 배움과 가치를 전달하는 곳에서는 배우러 온 사람에게 "우리 함께 가치를 펼쳐나가보아요"라고 하면서 저가에 노동력을 쓰려고 하는 형태의 시스템이 생기게 되는 것 같습니다. 아마도 마인드나 가치를 가르치는 곳은 으레 자본과 멀기 마련일 것이고 (마인드나 인생의 진리 이런걸 찾는 사람이 돈냄새가 나는 곳으로는 잘 가지 않을 것이라는 나의 판단) 그렇기에 경제적으로 여유롭지는 않을 테니까 그런 시스템을 택하게 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일반적인 자본주의적 마인드로는 이해가 안가지만 '돈', '돈'은 세속적이니까 아직 젊어서는 그런 것보다 가치를 더 우선시해야 한다고 생각했던 나는 생각보다 그런 선택을 종종 아니 자주했던 사람입니다. (그런 저를 보고 친구들은 '사이비 단체'에 빠진 게 아니냐고 우려섞인 얘기를 하기도 했습니다.) 

     

    그런 곳에서 하는 일은, 시간 대중이 없습니다. 시급이 아니니까요. 형태상 가치를 전달하는 곳이기 때문에 정해진 시간만을 들이지 않지요. 공부하는 겸 일하는 겸 나의 일상을 모두 쓰게 됩니다. "함께 성장하자"는 의도를 가지고 동업이 아닌 일을 같이 하는데 가치를 전달하다 보면 여타 다른 것에 신경을 쓰지 못할 수 있으니까 결국 노동을 전가하는 형태가 나오게 됩니다.(어쩔 수 없는 걸까요)

     

    전 마케터이자 경영 컨설턴트인 야마구치 슈는 책 《어떻게 나의 일을 찾을 것인가》에서 자신의 경험을 들며 이렇게 이야기했습니다.

    마케터 업무주에서 부대 서비스는 덤으로 이루어졌는데 그 때문에 영업 담당과 마케팅 기획자는 말도 못하게 바빴다. 서비스의 대가를 받지 않는 거래는 바람직하지 못하다. 광고 회사에서 제공하는 서비스는 끝이 없다. 두뇌 노동을 무료 제공하는 구조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이다. 무료로 제공하는 구조라도 만약 형태가 있는 제품을 제공하는 거라면 어쨌든 일은 한번에 끝난다. 하지만 두뇌 노동은 눈에 보이는 확실한 납품물이 없는 데다가 회사에서든 집에서든, 심지어는 술자리에서든 어디서든 일할 수 있다. 결국 두뇌 노동을 무료로 제공하는 구조는 그에 관련된 사람들의 인생을 바치는 것이나 다름없다. 

     

    공감이 가는 부분입니다. 그렇다면 노동 제공자인 내가 이런 선택을 하게 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시작은 이 곳을 찾아온 내 선택에 있습니다. 내가 원해서 그 곳을 직접 '찾아갔고' 그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는 것은 그들의 '가치에 동의'하는 바이니 같이 일하며 윈윈이 되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런데 일을 하다보니 일 양이 대중이 없고 너무 많다고 느껴집니다. 결국에는 가치와 일을 한 저울에 두고 비교하게 됩니다. '내가 얻는 가치와 내가 제공하는 노동은 비례하나?' 이런 계산적인 생각입니다. 네, 저는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니 자연스레 자문하게 됩니다.

     

    나는 온전히 그것에 집중했던가? (NO)
    그 가치를 위해 나를 내던질 수 있었는가? (NO)
    현실적인 부분에서 늘 고민하지 않았던가? (YES)

     

     

    현실적인 '돈' 적인 문제로 고민할 때마다 이 가치가 지금 당장 무슨 의미냐며 나를 나무랐습니다. 그 가치를 배우는 과정에서 나의 인생이 업그레이드 될 것 같다고 생각하는데 실상은 그렇지 않다고까지 느끼게 됩니다. 내가 찾던 가치가 아니어서 그럴 수도 있겠고, 내가 열과 성을 다하지 않았을 수도 있겠고, 가치를 찾는 내 스스로는 여전히 변함이 없고, 나는 여전히 경제적으로 힘든 삶을 벗어나지 못한다는 생각을 하며  결과를 맞이하고 다른 가치를 찾아 떠났습니다. 

     

    스콧 애덤스은 책 《더시스템》에서 '열정이 성공을 부르지 않는다'는 얘기를 합니다.

    열정이란 성공에 다를 수 있는 유용한 도구인가 아니면 사람을 비이성적으로 만드는 쓸모없는 도구에 불과한 것인가? 일이 잘 풀리고 있는 무언가에 열정적이기는 쉽다. 그리고 그런 점이 열정의 중요성에 대한 우리의 생각을 왜곡시킨다. 열정이 성공을 불러왔다기보다는 성공이 열정을 불러왔던 것이다. 그러니 당신이 성공으로 향하는 길을 계획하고 있다면 열정 따위는 잊어버려라.

     

     

    빌 바숍의 책 <핑크펭귄>에서 얘기하는 바와 같이 이제는 제품과 서비스에 집중하는 '매매개념'이 아닌 시대이지요. 사람들은 가치에 돈을 쓰니까요. 그러면 그 가치에 부합하는 돈을 받았다고 생각해야 나는 노동을 제공할 수 있는 것입니다. [자본+가치] 일테니까요. 그런데 이건, 자본주의는 빼고 가치만을 앞세운 이야기가 아닌가 싶습니다. 그런 선택을 나는 언제까지 지속할 수 있을까요.  

     

    그렇다면 이제 질문은 하나가 남습니다.

     

    나는 대체 왜
    이런 선택들을 했던 걸까.
    그리고 지금도 하는 걸까. 

     

     

    생각해보면 이건 그 단체의 문제라기 보다는 그 선택을 고민하는 나에게 원인이 있습니다.(그들은 나에게 제안을 했을 뿐) 내가 했던 생각과 나의 행동과 나의 고민은 나에게 제안했던 그 단체들이 의도했던 바가 아니었을 겁니다. 그들은 정말 '함께 성장'하고 싶은 마음으로 제안했던 것일 테니까요. 하지만 나는 뭔지 모를 나의 열정을 불러 일으키기 위해 그런 단체를 선택하고 나를 의지적으로 끼워넣는 노력을 하고 있지 않았을까요. 목적없이 그들의 열정에 편승해 무언가를 얻기 위한 기생적인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이지요. 내가 원하는 것을 명확하게 모르니 허울 좋은 그런 선택을 하게 되는 것일 테고요. 이 글을 적으면서 결국 질문은 저로 돌아왔습니다.

     

    사회 안에서 그 가치를 인정받는 기업은 노동자에게 노동의 댓가로 어마어마한 연봉을 줄 수 있지만 그렇지 않은 부류의 기업이나 사업장은 그럴 수 없는 형태가 많습니다. 그렇다면 노동자의 선택이 남은 것입니다. 그렇죠, 노동을 제공하려는 자는 선택할 수 있는 거에요. 그리고 노동자로 돈을 벌 것인지 다른 형태로 돈을 벌 것인지도 선택할 수 있습니다.

     

    나는 선택할 수 있고 원하는 바를 이룰 수 있는 사람이라는 자신의 확신이 필요합니다. 남에게 편승해서 뭔가를 얻고 싶다는 생각도 버려야 합니다. 내가 원하는 가치를 내가 원하는 형태로 나는 만들고 누릴 수 있다는 생각을 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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